[칼럼]‘인문한국’에의 꿈

기사등록 : 2017.09.12 (화) 08:58:14 최종편집 : 2017.09.12 (화) 08:58:14      
한국의 비석거리에는 그 잘난 송덕비만 있지만, 중국에서는 다양한 서체와 함께 세워진 시비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가 있었다. 굴원의 사당에서만도 356개의 시비가 서 있었다.

지난 여름, 다산연구소와 함께하는 중국인문기행을 다녀왔다. 우리가 둘러본 곳은 호남성 일원으로 성도인 장사를 비롯해서 악양, 멱라, 평강, 소산 등지였는데, 떠나기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모택동이 장사 출신이라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도착 당일 빗속에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악록서원이었다.

주자의 백록동서원이야 그 이름만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악록서원이 백록동서원에 버금가는 반열의 중국 4대 서원 중 하나요, 어쩌면 세계 최초의 대학이랄 수 있는 역사 깊은 교육기관이라는 것이나, 1167년에 주자가 찾아와 남헌 장식과 3일 밤낮에 걸쳐 심성론(心性論)을 토론한 성리학의 성지라는 것 등은 거기 찾아가서야 비로소 알았다.

! 나의 무지와 무식함이여

지금 서울의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제백석(齊白石, 1864~1957)의 고향이 이 근처라는 것도 기념관에 가서야 알았다. 전시된 작품들을 관람하다가 기념관의 안내 아가씨가 중국의 남방에서 난다는 과일 그림 앞에서 이 작품이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그 까닭을 설명하지 못했다. 서둘러 송재소 교수를 모셔다 그림 위쪽에 쓰여있는 화제(畵題)를 읽어달라고 해서야 제백석의 화론에 접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묘법은 같은 것과 같지 않은 것 사이에 있는데, 너무 같게 그리는 것은 세속에 영합하는 것이요, 너무 다르게 그리는 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 나의 무지와 무식함이여. 한문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송재소 교수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거나 송재소 교수가 준비한 안내책자는 그대로 우리들의 교과서였고, 그의 설명은 중국의 현지 책임자들조차 귀 기울일 만큼 깊고도 해박했다.

악양루가 유명한 것은 경승도 경승이지만 동정호 있다는 말 옛날에 들었거니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네(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로 시작하는 두보의 시와 범중엄의 악양루기()’에 힘입은바 더 크다는 사실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옛 어진 이는) 외물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자기 일신상의 일 때문에 슬퍼하지도 않는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 백성을 걱정하고, 멀리 강호에 살게 되면 그 임금을 걱정했으니 이는 나아가도 걱정하고 물러가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때에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말하기를 천하 사람들이 걱정하기에 앞서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연후에 즐거워하였다하리라. !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 누구와 함께할 수 있으리오.”

범중엄의 먼저 걱정하고 뒤에 즐긴다(先憂後樂)’는 네 글자는 만세토록 위정자의 보감(寶鑑)이 되었으니, 두보의 시와 범중엄의 악양루기를 보고 난 뒤의 악양루는 어제 듣고 보던 그 악양루가 아니다. 인문의 힘은 이렇게 크다. 평강에 묻힌 두보의 묘사(墓祠)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했던 굴원의 사당을 배관(拜觀)하면서 사람다운 사람은 누구이며, 역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잃어버린 인문적 자존심

과연 중국은 인문의 보고였다. 인간의 무늬, 인문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가는 곳마다 널려 있었다. 한나라 시대 가의의 고택이 상존하고 있는가 하면 신해혁명의 여전사 추근의 고거(故居)도 가꾸어지고 있었다. 한국의 비석거리에는 그 잘난 송덕비만 있지만, 중국에서는 다양한 서체와 함께 세워진 시비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가 있었다. 굴원의 사당에서만도 356개의 시비가 서 있었다.

젊은 시절 모택동의 발길이 닿은 혁명의 유적들을 돌아보는 감회도 새로웠지만 모택동이 그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써놓은 시부(詩賦)들을 보면서 그의 넓고 깊은 인문적 소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악양루 3층에도 두보의 시 등악양루가 모택동의 글씨로 걸려있었다. 강서성 구강의 비파정에도 그의 글씨가 걸려있는데 백낙천이 쓴 비파행’ 616자를 외워서 썼는데 다만 다섯 글자만이 틀렸을 뿐이었다고 한다.

중국인문기행을 하면서 나는 한국의 참담한 인문적 수준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중화(小中華)니 동방예의지국이니 하는 인문적 자존심이나 옛 선비들의 그 치열했던 인문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류의 원조라 할 조선통신사들에 쏠렸던 일본인들의 선망과 존경의 눈길도 이제는 먼 옛날의 얘기가 되었다. 지금 일고 있는 한류라는 것도 인문이 밑받침되지 않는다면 한갓 한때의 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중고등학생은 한시를 200~300수 외울 수 있다는데 과연 한국의 학생들은 몇 수를 외울 수 있을까.

그 무렵 마침 국내에서는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한참이었는데, 그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꺼운 낯은 한국인문의 수준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는데(不恥則 無所不爲)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에게 인문적 바탕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백범 김구 선생은 그의 글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고 한 것은 우리나라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문국가로 가야 한다는 지침으로 나는 이해한다. ‘인문한국’,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꿈이다. 한민족의 자존심을 인문에서 찾는 날이 그 언제나 올 것인가.



기사등록 : 박 청 기자 / yh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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